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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NTA 청산되지 않은 적폐
    PEOPLE/세상을 보는시각 2021. 4. 10. 13:47

    미얀마의 현재를 보며 우리의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청산되지 않은 적폐가 얼마나 많은 피를 부르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을 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와 군사독재자에게 붙어서 돈과 명예를 얻은 자들이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기득권층이라는 이름으로 귀족계급을 이루고 있다.

    윤선열이라는 정치검찰의 수괴가 야당 최고 지지율의 대통령후보가 되고 조중동 보수언론이 구국의 지도자로 우상화를 하느것을 보며 조국의 미래가 어둠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다시 미얀마로 보자.
    일제에 대항하여 반파시스트인민자유당을 만들어 일제에 대항하여 독립운동을 한 버마민족주의자 아웅산 장군이 당사에서 총기난사에 의해 1947년 의문의 사고로 사망을 했다.
    민족의 지도자이자 대통령이 될 사람이 암살을 당했는데도 암살의 배후는 지금까지 묻혀져 있다.

    출처:나무위키 아웅산 장군부부


    한국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김구선생의 암살이다.독립투쟁을 하고 이승만의 가장 강력한 정적이고 민족지도자인 그가 암살을 당했지만 안두희라는 장교한명의 삐뚜러진 애국심므로 묻어 버렸다.

    그리고 한국은 이승만이 미얀마는 우누가 집권을 하였다가 한국은 1960년 4.19혁명으로 무너지고 다시 61년 박정희의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시작되었다.
    미얀마 역시 1962년 네윈이 쿠데타를 일으켜 버마식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긴 군사독재가 시작이 되었다.


    한국은 이후 25년을 박정희 전두환의 군사 쿠데타 정권이 집권하고 1980년 5.18일 광주시민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출처 동아일보


    1987년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후
    노태우 김영삼으로 이어지는 적폐와 연합한 보수정당이 이어지다가 DJ,노무현의 개혁정권 10년후 다시 적폐기반 보수정권미 복귀한후 2016년 촛불항쟁후 2017년 민간개혁 정부를 만든지 겨우 4년이 지났다.

    미얀마는 1988년 88학생시위로도 군사정부는 계속되다가 2007년 샤프란 혁명으로 50년만에 2010년 군사쿠데타 정부가 선출정부가 되고 2015년 민간정부를 만들수 있었다.

    두 나라가 오랫동안 군사정부에 고통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같은 군사정권에서 고통을 받다가 미얀마는 다시 군부가 반란을 일으켜 집권을 하고 한국은 민간주시민정부가 집권할수 있게된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 오늘의 미얀마 사태를 읽고 우리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단초가 될수 있다.

    두 나라가 오랫 동안 군사정권에 민주주의를
    빼앗긴 가장 큰 이유가 일제 식민지 부역자 청산의 실패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1940년부터 1945.8.15일 일제패망까지 미얀마인블은 백만이 넘는 민중들이 사망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일제 패망후 영국식민지 복귀 시절2년도 일본에 부역한 버마 부역자 청산은 되지 않아시고 아웅산 장군이 사망하고 우누가 집권을 한후에도 역시 일제 부역 청산도 암살의 진실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식민부역자 청산 없이 한국과 미얀마는 다시 군사정변으로 군사정부에 의한 폭압정치 시대를 맞이하였고 한국은 87년 6.10 항쟁으로 직선제개헌을 한후 십면후에야 김영삼시절 시민의 힘으로 5.18 시민학살 주범 전두환,노태우를을 감옥으로 보낼수 있었다.

    출처:위키피디아.8888 버마 민주항쟁


    그러나 미얀마는 불행히도 1988년 대학생의 88항쟁이 군부의 무장진압으로 3,000여명의 사망자를 낳고 무산이 되고 다시 이십년이 흘러 2007년 샤프란 혁명으로 겨우 선출정부의 기반을 만들수 있었다. 2015년 아웅산 수치로 민간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3,000명의 시민을 죽인 학살자를 처단하려는 의회나 시민의 노력도 없어시고 정부의 적폐청산도 없었다.

    출처 동아일보.아웅산수치와 민 아옹라잉


    한국이 독재자를 감옥에 보내고 시민학살 부역자를 청산하려고 노력했음에 불구하고
    다시 이명박 박근혜라는 군사정권의 아류 보수정권을 맞았고 다시 촛불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수백만이 시위를 하여 겨우 민간 시민정부세우고 4년을 맞을수 있었지만
    미얀마는 5년만에 다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군사독재 시절로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지금 미얀마는 다시 시민의 피로 댓가를 치르고 있다.

    오늘의 미얀마를 보며 대한민국이 시민의 힘으로 민주국가를 이루었다고 자만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비극의 시작이었던 식민지 친일의 청산은 미얀마나 한국이나 모두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얀마가 일제 5년의 일제식민지기간 동안의 부역자를 청산하지 못하고 해방을 맞고 영국에서 독립을 했어도 네윈의 군사 쿠데타에 취약했던 것은 처단되지 않은 버마의 친일파들이 친일로 부를 이루고 그 부로 권력자에게 부역을 하고 국정을 뇌물과 권력으로 분탕질하여 군사반란에도 국민들이 무심하게 만들었던 것이 원인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시 취약하다. 친일파들이 친일 부역으로 부와권력을 만들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을 지나며 매판재벌이 되고 언론재벌로 기득권의 기반을 공고히 하였다.

    검찰이라는 선택되지 않은 권력이 정의를 독점하고 휘두르는 것을 지금도 보고 있다.

    아마도 이 댓가는 서울시장 부산시장을 빼앗긴것 처럼 다음 대선을 빼앗기면 시민이 치루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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