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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2월16일 대통령선거 기억의 소환PEOPLE/세상을 보는시각 2020. 4. 13. 02:41
가절했던 선거가 3일 앞으로 다가왔다. 촛불혁명으로 시민의 정부를 만들고 대통령 우리 사람으로 세우면 적폐청산 반은 된줄 알았다.
수구와의 싸움은 해방이후 칠십년 절대 쉽게 끝날투쟁이 아니었다. 친일적폐들이 시민을 만만히 보고 있는것 같아 싸움의 기억을 소환한다.
늙은 군인의 노래로 시작을 해야할까보다.
우리때는 변변한 민중가요가 없어 늙은 투사의 노래로 가사를 바꾸어 불렀다."나 태어난 이 강산에 투사가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길 어언 삼십년 "
스믈다섯 청춘이 586이 되었다.연식이 오래 되었다고 대포가 물총되는 것은 아니다.혹자는 투쟁을 젊은 치기정도로 생각하겠지만 최류탄 냄새 자욱한 아스팔트,밤새 싸우고 맞이하는 신새벽,
졸고있는 동갑내기 전경들.
그것은 전투가 멈춘 전쟁터의 모습이었다.그렇게 만들어진 투사들은 지금까지 민주주의의 퇴행을 감시하며 살아오고 있다.
1987년 12월 날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장충체육관에서 뽑는줄 알았던 대통령을 직접 국민의 손으로 뽑는 날이었다.
같은 대학생이 최류탄에 맞아 죽어가며 얻은 대통령직선제 혹시 표를 탈취당할까봐 대학생 공정선거 감시인단에 지원하였다.
안양시 박달동 3 투표소였다.
전날 백여명의 학우들과 혹시라도 늦을까봐 안양의 허름한 여인숙과 교회에서 밤을 세우고 새벽에 길을 나섰다.그리고 잠시후 전경들이 둘러쌓다.닭장차에 실려서 발로 유치장으로 갔다. 항의를 하며 유치장에서 투쟁가를 부르고 구호를 외쳤다.
경찰들도 감금이 불법인줄 아는지 내버려 두었다.새벽부더 오후까지 쫄쫄 굶고 갖혀있다 느즈막히 풀려났다.투표장에 합류하여 박달동 투표함을 개표장으로 옮기는것을 감시하였다.
그리고 급보가 날아왔다.구로구청에서 부정투표함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구로구청으로 달려갔다.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사건
https://www.kdemo.or.kr/blog/location/post/603지나가는 버스에 올라 선거부정이라고 소리를 치다가 버스가 출발하는 바람에 떨어진 기억이 삼십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학내민주화 점가농성 때문에 학교로 돌아왔는데 구로구청이 전경들에 의하여 공격당하고 학우들이 건물에서 떨어지는 것은 소식으로만 듣고 그자리에 없는 것이 한탄스러웠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첫 선거이다.
더 잊혀지기전에 기록을 해놓고 싶었고 힘으로 누르면 숨죽일 것으로 생각하는 적폐들에게 검찰에게 쫄지 않는 이유를 알려주고 싶었다.윤석열 패거리들 도서관에서 법전파고 있을때 날아오는 최류탄 피하고 지랄탄 발로로 차고 다녔다.
백골단이 잡으러 뛰어와도 꽃병을 던졌다.너희 부패검사 패거리 정도가 무서울리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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