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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사태를 바라본는 관점PEOPLE/세상을 보는시각 2021. 3. 28. 13:17
어제 날짜로 미얀마는 내전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소포도장군에게는 라인으로 간단한 인사와 안부를 전했다.
난킨퉤밍수상의 안부도 걱정스럽다.
지금 한국에서 카렌형제들을 도울수 있는것은 사실을 전하는것 밖에 없다. 워낙 알려진것이 없고 변방이라 버마의 입장이 미얀마의 입장이고 버마의 이익이 미얀마의 입장으로 대변되었다.
그러나 이제 카렌사람들이 반군부 민주화 무장항쟁을 시작하며 그동안 반군집단 정도로 알려진 KNU와 KNLA의 모습이 충분히 알려져야 함을 느끼고 있다.
미얀마 군부의 민중학살과 내전 그리고 그 끝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관점이 필요하다.
그럼 몇가지를 보도록 하자.
왜 쿠데타의 날짜가 2월 1일 새벽이었을까?
이 날짜가 중요한 것은 이날이 의회를 개원하는 날이기 때문이고 개회가 되면 당선자들이 국회의원이 되는날이기 때문이다.
대통령간선제릇 채택하는 미얀마는 총선읏 마치고 의회가 개원하면 대통령을 지명하고 행정부를 구성한다. 2월 1일 새벽이라는 것은 행정부만료와 의회개원 중간의 빈시간이다.
군부 따마도가 이미 오래전부터 쿠데타릇 계획하였음을 알수 있다.
쿠데타의 징조는 이미 있었다.
쿠데타의 징조는 1 년전부터 시작이 되었다. 작년 미얀마 국군의날 즉 따마도창건일 행사에 딴쉐가 등장을 하고 그의 얼굴로 만든 딴쉐불상을 꺼내기 시작하며 징조는 시작이 되었고 미얀마 군부는 시간표에 맞추어 정부 전복을 준비하였다.
사람들은 군부쿠데타에서 딴쉐에 대하여 간과하고 있고 그를 너무 모른다.
아래는 루트아시아의 딴쉐에 대한 십년전 칼럼이다.
딴쉐를 무식한 독재자로 보기만 한다면 절대 그를 알수없다.
https://rootasia.wordpress.com/2012/10/10/%ED%83%84%EC%89%90-than-shwe/
아래는 DVB에 소개된 딴쉐의 일대기이다.
http://www.dvb.no/analysis/the-general-must-not-be-disturbed/8617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로 정리하면 이렇다.
카렌스테이트에서 정부군이 병력을 두배를 증강을 하였다. 이것의 의미는 따마도가 이미 반군부 무장세력이 가장 왕성한 카렌스테이트의 반발을 예히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2015 평화협정에 의하면 정부군과 무장세력은 양측의 협의 없이 병력을 증각할수 없도록 되어 있다.
또다른 중요한 징조 하나는 작년말 국경수비대BGF에 대한 재정비가 있었다.
카렌스테트에서 따마도만큼 중요한 군사력이 국경수비대이다.카렌주 주요무장세력 KNU의 KNLA와 DKBA에서 2010년 DKBA 끌라뚜호가 먼저 정부군에 투항을 하고 국경수비대BGF로 재구성이 되었고 2013년 가장 강성이었던 DKBA5가
국경수비대로 리폼이 되었다.
KNU의 KNLA는 2015년 Natiinal cesefire agreement를 맺고 BGF로 변경을 거부하였다.
이렇게 KNLA 대 BGF 그리고 Tatmadaw로
대항하던 군부에서 변화가 있었다.
작년말 군부는 BGF사령관 셋을 몰라먀잉으로 불러 충성을 점검한것이다.
DKBA 끌라뚜보출신의 띤윈과 칫뚜는 군부에 협력하기로 하였고 DKBA5 출신 모똥은 거절을 하고 BGF대장을 사임하였다.
모똥의 대장 사퇴는 자신의 부대 대장을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BGF1011이 다시 DKBA5로 귀환을 의미한다. 군부는 모똥의 사퇴를 유보하였다.
모똥은 오랫 친구라 몇번 물어본적이 있었다. 만일 정부군이 다시 카렌사람을 공격하면 어떻게 할 테냐? 라고 물으니 모똥은 당연히 군부에 대항하여 카렌사람을 지킬 것이라고 하였다.
이번 군부 쿠데타에서 그는 버마인의 일의 버마인이라는 입장을 견지하였는데 어제 카렌에서 따마도의 총격이 시작된후 이 입장은 폐기가 되었다.
카렌에서는 정확히 2011년으로 돌아간 것이다.그때도 정부군 따마도와 칫뚜,띤윈의
DKBA 끌라뚜보가 모똥의 DKBA5와 소포도장군의 KNLA7을 공격하여 수만명의 난민이 태국 매솟으로 건너온적이 있었다.
주변에서 일어난 일이라 저간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기사를 검색해보니 이미 북부의 무장군벌들에게는 여러잇권과 협박으로 입막음을 핸놓은 것을 알수 있었다.
왜 정부를 전복했나?
대답이 싱거워서 질문이 민망할 정도이다.
미얀마 군부는 잠시 통치를 민간에게 맡긴것일뿐이다. 1988년 88 학생봉기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쿠데타로 집권한 딴쉐가
국제사회에 고립이 되고 2008 샤프란 혁명 무력진압을 자해하자 서방의 제재가 한층 강화가 되었다.
18년의 집권하며 정적을 제거하고 자신의 수하들로 군부와 경제를 손에 쥐자 여유가 생겼다.가장 약한 군부의 떼인세인에게 대통령을 넘겼다가 그가 경제를 개방하고 선거로 아웅산수치 민간정부로 정권을 이양하자 당황을 하였다가 이번에 다시 권력을 찾아온것이다.그 뿐이다.
미얀마 민간정부는 한번도 완벽한 권력을 갖은적이 없었다.
몇년전 네피도 출장에서 장관 몇과 차관 중앙은행 부총재를 만나며 직접 경험을 하였다.
군부지명 장과과 차관의 반대로 되는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안되는 것을 보며 군부는 미안마의 발전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챘다.
미얀마 군부 Tatmadaw가 원하는 것?
따맛도는 1948년 영국식민지에서 해방이후
미안망이 부와 권력을 소유한 통치집단 이었다.정권은 군사정변으로 군부에서 군부로만 바뀌는것 뿐이었다.
수십년의 군부독재로 쇄국정책하고 무역과 광삼을 독점하며 쿠데타로 집권한 딴쉐 마지막 정적을 몰아낸후 미얀마 군부는 한 국가의 거의 완전한 부와 권력을 이루었다.
아래는 시사저널의 최근 기사이다. 딴쉐의 하수인 민아웅 ㅎ 라잉과 군부에 대하여 잘 정리가 되어있다.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14275
미얀마 군부 따마도를 서방의 상식으로 그릇된 애국심을 가진 군부라는 잘못된 결론 조차도 이들에게는 과분하다.
이들은 미얀마 전체를 소유한 군부재벌일 뿐이고 민주주의 국민 이런 생각은 처음부터 없다.
기업이 자신의 이익을 지리기 위하여 노조를 탄압하는 것과 같고 단지 권력까지 손에 쥔 이들에게는 브레이크가 없을 뿐이다.
미얀마 군부의 시민학살은 언제까지?
그릇된 애국심의 무장집단 조차도 되지 않는 놈들이다.수천명이 죽고 미얀마 시민들이 모두 군부의 명령에 복종할때까지 이다.
이번 진압에 동원된 군대는 이미 로힝야 학살과 국경지대소수민족 분쟁에서 악명을 떨친 경보병 Light infantry Devision부대이다. 경보병대대 LID는 소총부대가 아니라 경무장 특수부대, 한국군의 공수부대 또는 특공연대정도로 이해를 할수있다.
이번 만달레이에서 발포를 한 경보병 LID33은 라카잉의 로힝야를 학살한 그부대이고 LUD77은 바고에서 샤프란항쟁때 카렌족에게 무차별 사살은 한
군대이다.
LID19.LID22는 수십년동안 카렌스테이트에서 KNU와 전투를 벌이고 양민을 학살한 부대이다.
아래는 진압에 동원된 미얀마 경보병 연대이 정체이다.
https://www.irrawaddy.com/opinion/guest-column/myanmar-militarys-notorious-foot-soldiers.html
앞으로 수백명이 하루에 죽어나가도 이 집단은 호텔에서 건군일 축하파티를 할것이고 정권수립 축하연을 열것이다.
딴쉐와 민아옹ㅎ라잉 그리고 군부고위층들은 미얀마에서 돈되는 모든것을 자식들에게 넘기고서야 흉내라보 민간정부 민주주의를 시작할것이다.
이미 이십년전에도 양곤에서 스포츠카 백대를 가진 실력자의 아들의 기행은 뉴스거리도 되지 않았고 빤스와 생리대 고급스파를 위하여 싱가포르와 방콕을 오가는 항공사를 따로 만들정도로 귀족들이 었다.
몇년이 걸려도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는한 계속될것이고 앞으로 몇발동안은 아프리카의 인종청소를 보듯 시민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볼수있게 될것이다.
임시정부미얀마 의회대표부 CRPH
CRPH는 Committee Representing Phydangsu Hluttaw 는 미얀마어의 삐당수 (ㅎ)루터, 의회당선자를 대표하는 위원회라는 뜻이다. 의회당선자라고 한 이유는 위에 설명했던 2월1일 새벽쿠데타로
국회가 개원을 하지 못하여 당선자의 신분이기 때문이다.
1200명의 인사와 의원이 구금이 되어 13명의 연방의회당선인과 4명의 스테이트의회 당선인이 대표로 만들었고 현재 자신들을 망명정부 또는 임시정부로 칭하고 있다.
스테이트 지역에 있다고 하는데 소재는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다.아마도 카렌스테이트 파안에 KNU 본부에 있을것으로 추정을 한다.
아웅산 수치정부의 하원의장이 었고 나중에 대통령으로 취임한 윈민대통령과 지금 CRPH의 대표를 맡고 있는 전 소수 민족측 부통령이 카렌족이라 파안에 있는 것은 당연할것 같다.
아직 미얀마 시민을 대표한다고 보기에는 어렵지만 따른 대안이 없는한 이들의 대표성을 인정할수 밖에 없다.
CRPH는 미얀마 민주회복을 촉구하고 유엔 평화유지군을 요청을 하였다.그리고 rebel army라고 불리우는 소수민족무장세력을 통합하여 군부에 대항하려 하고 있다.
아직 전국적인 시민항쟁 지도부조직이 부재한 가운데 CRPH의 역활이 전적으로 미얀마 연방전체를 대변한다고 볼수는 없겠지만 버마족이 대다수인 중앙정부 지역의 시민들을 대표한다고 볼수는 있다.
CRPH의 군부와 국제사회에 대한 호소는 대부분 부정적이다. 군부는 이미 상술하였고 국제사회의 도움 즉 PKO파병은 상임안보리 국중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불가능하다.
아세안이 도와줄수 있을까?
미얀마 군부를 견제하고 시민들을 도울수있는 가장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국가들이 아세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쿠데타를 바라보는 속내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아세안의장국 보르네오의 입장에서는 직접적인 연관이 별로 없다.무슬림도 아니고 왕정인 보르네오에서 미얀마 시민항쟁이 나서서 도와줄수 있을만큼 달가운것도 아니다.
태국은 쿠데타로 집권한 뿌라윳 수상과 민아웅ㅎ라잉의 친분은 이미 소문이 나있다.
지금 방콕의 학생민주시위가 미얀마 덕분에 외신에 오르지 않는 어부지리도 얻고 있고 미얀마 군부와 태국군부의 유대는 상당히 오래 되었다.
필리핀의 두테르테는 바다건너라 언급할 이유도 느끼지 못하겠고 캄보디아 훈센의 독재나 라오스 공산당의 독재가 미얀마군부의 독재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인도차이나 군사대국 베트남의 입장이 갓상 난감할것 같다.
쿠데타에 공식적으로 반대하는 국가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이다. 아세안 회의를 열어 외교적 압박을 해홀 모양인데 아세안 10개국의 사정이 이러니
미얀마 결의안믈 내기조차 힘들어 보인다.
게다가 이번 쿠데타가 중국과 조율을 한 징조가 여러군데서 발견되고 있는데 중국의 이익에 반하여 목소리를 낼수 있는 국가가 몇이나 있을까 싶다.
미얀마 시민들이 기대하는 것은 결국 미국의 개입이다.
PKO 미국은 개입할수 있을까?
미국은 반드시 개입하고 싶어한다.
향후 인도차이나의 영향력과 인도태평양 중국방어의 성패가 미얀마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아무리 부인을 해도 관여의 정황은 쿠데터 2주전 왕이의 민 아웅ㅎ라잉 면담과 더불어 그 이전에도 군부의 후원은 여러곳에서 나타난다.일년전 아웅산 수치의 중국방문보다 민 아웅ㅎ라잉의 방중때 훨씬 비중있는 미팅들이 있었다.
자원이나 외교 무엇이던갓 중국은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도 않고 놓치지도 않을 것이다.
미국이 개입할수 있는 것은 서방 G7과 쿼드를 활용한 경제재제와 무력제재이다.경제재제는 이미 알려진것처럼 워난 중국에 경도 되어있어 서방의 어떤 제재도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이라크와 같은 군사제재가 선택의 마지막인데 어떤 명분으로 던 미얀마를 침공하는 것은 중국과 직접적인 대결을 할수밖에 없다.
게다가 미얀마 군은 알려진것과는 달리 동남아의 군사강국이다.
몇년전 양공공항에서 하늘을 날아오르던 MIG27을 보며 터보프롭기나 헬기만 있을줄 알았는데 의외의 장면에 신기하였던 경험이 있다.
미얀마 군은 약 50만명으로 추산이 되고 있고 버마족중심의 정규군 따마도와 국경수비대 BGF로 구성이 되어있고 BGF는 정규군을 보조하는 전략이다.그리고 마을단위로 PMO가 있는데 이들은 자경단정도로 이해할수 있고 BGF를 보조한다.
육군은 약 50만명이고 동남아에서 베트남에 이어 2위이다. 전차는 700대이내이고 3세대
중국산 IBT-2000이 50대이고, 2세대 T72와 중국산 69시리즈가 270대 가량있다.
그외는 60년대 전차이다. 1000대의 장갑차와 2,000대의 대포가 있고 수백발의 미사일이 있다.
유군전력은 주로 반군과 전투정도라 보잘것이 없었으나 역설적이게도 2010년 이후 중국제로 현대화 되었다.
19,000명해군력은 해안경비대 수준으로 무시해도 될수준이고 잠수함은 최근 인도에서 중고로 kilo급을 3척을 가져왔다.
공군력은
공군력은 23,000명으로 100대 미만의 중국과 러시아산 전투기가 있다.
주변에 위협할만한 국가가 없어 미사일 전렬 역시 보잘것 없다.
미국입장에서는 7함대와 주한 미국만 보내도 될정도로 보잘것 없는 전력이지만 밀림의 장기전을 생각한다면 베트남전의 그것 만큼 악몽일수도 있다.
긴 우기와 밀림 중국과 전면전을 경계하며 미얀마 따마도와 전쟁을 하기에는 쉾시 않은 선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얀마를 포기할수는 없다.
대한민국의 파병의 명분
초기부터 가장 경계릇 했던 부분이었다. G7과 쿼드릇 중심으로 미국이 파병을 한다고 할때 명분과 능력이 있을까 라는 의문과 과연 파병이 미얀마 민주주의의 미래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라는 부분이었다.
역사를 통해 외세의 개입으로 얻은 승리가 오래간 적도 없고 어떤 명분으로던 정당했던적도 없다.
지금 아프리카와 중동에 파견된 PKO 역시 내전의 악화만 막고 있을 뿐이고 미군의 탈레반 제거하고 아프가니스탄 철수하려던 작전역시 십년을 넘게 수렁에 빠져있고 시민들은 가난과 전쟁에 고통을 받고 있을 뿐이다.
미국의 개입은 미얀마군의 전력을 볼때 해병대의 상륙작전이 필수이고 상륙전을 할수있는 전투장비와 능력을 갖고 있는 국가는 한국해병대가 미국다음으로 2위이다.
이미 태국 남부해안에서 매년 코브라작전이라는 이름으로 태국 미국군과 상륙훈련의 경험을 갖고 있고 장비 또한 훌륭하다.
KAAV 해안 돌격장갑차는 자체 생산하고 있고 솔개급과 무레나급 공기부양정으로
초수평선 접근도 가능하다.
미국입장에서는 미얀마 쿠데타가 완전히 자리잡기 전에 어떻게든 한국을 끌어들여야 하는 절박성을 갖고 있다.
한국이 아시아 민주주의 수호라는 명분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며칠을 민족자결이라는 원칙과 명분으로 고심을 하였다. 국가의 결정이라 할지라도 시민의 의사가 중요한 이 나라에서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국뽕에 경도되지 않는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 머리를 싸맺다.
어제 백삼십 명이 죽고 거리를 걷는 시민에게 무차별 총질을 하는 따마도릇 보며
생각을 정리하였다.
옆집에 강도가 들어와도 개인안전을 빌미로 112에 신고를 하는것으로 최선일까 라는 생각으로 시작하였다.
미얀마 군부는 따마도라는 종을 가진 조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조폭을 용인하면 어느 순간에 아시아 전역은 총으로 정부를 무너뜨리는 군부의 폭력이 일반화 될것이고 최후에는 우리의 민주주의도 위협을 당할것이라는 것으로 파병의 정당성으로 스스로 에게 납득시켰다.
여기에는 미국은 남북경협을 인정하라는 얄팍한 실리도 곁들여 있다.
아마도 미얀마는 미군과 한국군의 평화유지군으로 따마도라는 폭력배는 몰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따마도에 대한 완전한 적폐청산이 없다면 또 다른 따마도가 민주주의를 위협을 할것이고 언제던 민간정부를 전복시킬 것이다.
그리고 버마족의 미얀마는 포기해야 할것이다.
중국이 모두를 빼앗기지도 않을 것이고 미국이 모두를 가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
긍극은 이렇다.
미얀마 분할 민족자결이다
북부 샨은 중국의 영향 아래 있고 이미 경제적으로 종속이 되어있다.샨족의 주종족임 타이야이는 묘족의 방계로 중국어에 능숙하고 문화적으로도 익숙하다.
북부가 타이야이로 독립을 하고 남쪽은 백년전 테나세림을 경계로 분할이 될것이다.
지금 카렌주와 몬주 따린타이 지역이다.
주종족은 카렌족이고 종교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익숙하다.
미얀마 내전으로 발생한 난민이 수십만명이 이미 호주 미국 캐나다등으로 이주를 하여 생활하고 있어 중국보다는 서방과 가깝다.
이번 군부 쿠데타가 미국의 개입으로 끝나던 개입이 없이 마무리가 되던 남부 지역은 확실히 KNU중심으로 독립을 하게 될것이다.
이미 작년에 KNU는 자치연방이 아니라 독립을 목표로 하기로 합의를 한바있다.
지금 버마족의 미얀마 중부는 버마족의 버마가 될것이고 아웅산 수치민간정부가
복권을 할것이다.
북부 중부 남부로 독립이 되어도 세르비아 내전이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같은 국지전이 계속될수 있다.
어차피 대한민국이 관여가 되어야 한다면 여기까지는 예상을 하고 일을 도모를 해야할 것이다.
마무리:
미얀마 쿠데타 소식을 듣고 두달가까이 생각을 하였다. 형제처럼 지내는 미얀마 지인들과도 통화를 하였다.
이제 정리를 마쳤다. 아마도 대한민국의 개인이나 기관 국정원 외교부 역시 비슷한 숙제를 안고 있을것 같아 글을 장리하였다.'PEOPLE > 세상을 보는시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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