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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안해요 베트남
    PEOPLE/세상을 보는시각 2020. 4. 23. 14:32

    베트남 양민학살은 인정하고 싶지않은 기억이다.그러나 사실이다.
    베트남 인이 한국에 국가배상을 청구하였다.

    연합뉴스
    https://m.news.naver.com/read.nhn?oid=001&aid=0011566781&sid1=104&mode=LSD

    일본처럼 증거가 없다.또는 우리는 용병이었다라고 빠져 나가는 방법도 있다.비교하자면 2차대전의 일본 식민지로 삼았던 프랑스 그리고 미국도 같은 범죄를 저질렀으니까.

    1980년 광주.자기나라 국민도 수백명을 총으로 쏴죽인 나라가 용병으로 참여한 남의나라 전쟁에서
    양민을 학살한것 대수가 아닐수 있다.

    1950년 남북내전에서 노곡리 양민학살 같은 편인 미군이 자행하였고 아직도 사과를 받지 못했다.베트남전 누가 베트콩인지 양민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실수라고 할수도 있다.

    이것이 극우가 우리자신에게 하고 있는짓이다.광주사태가 민주혁명이 되것이 몇년되지 않았다.제주 학살은 오십년도 지난 뒤에야 밝혀지고 있다.
    1988년 올림픽 제주도를 찾았다.대선에서 지고 학생운동에 대한 피로감으로 목포에서 삼등여객선을 타고 제주로 갔다.
    잠시 제주대학 학생회에 들러 제주 4.3에 디하여 들었다. 그때도 사람들은 말하기를 꺼려하였다.민박을 하던 동네의 노인들도
    기어하려 하지 않았다. 빨갱이 취급을 받더 시절이었으니까.

    베트남 양민학살 부정할수 없다.분명히 한국군에 의하여 자행된것 사실이다.2000초 민중작가회의 주최로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다. 그때 증언을 듣고 증인을 만났었다. 이후 태국에서 사업을 하는중 베트남을 여행을 하며 눈으로 비석과 기록을 보았다.

    한계레21 1968년 2월22일 퐁니.퐁넛 양민학살

    만일 베트남 양민학살 배상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쌓은 발전과 민주주의가 남의나라 국민의 피위에 쌓은것 임을 인정해야 한다.

    베트남 먹고살게 도와준것으로 핑계를 삼으면 안된다. 파월장병들 중늙은이가 되어 관광으로 베트남을 다니여 용맹을 자랑하기 바뻣지만 미안한 마음으로 속죄하는 사람은 아직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필요로 공장을 짓고 투자를 한것이지 미안함과 속죄를 없었다.

    사과를 하고 속죄를 청한것은 이후 세대였다. 민족작가회의가 방문하고 이후 많은 단체들이 양민학살지를 찾아가며 사과를 하였다.

    그들은 당신들 뜻이 아님을 안다.단지 미국의 용병으로 온것이다.이해한다라고 하였다.
    어떤 자격으로 왔던 불의한 짓은 사과를 하여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 한명까지 용서할때 까지 말이다.
    까스통 할배들이 똑똑히 들어야 한다.당신들의 죄를 후손과 나라가 대신 갚고 있다.

    소송에서 베트남 사람들은 배상은 필요없다고 하였다. 사과만 원한다고 하였다.아니 배상도 하여야 한다. 오십년 이자까지 더해서 그들의후손에게 배상하여야 한다.미국에서 용병비용으로 받은 몇배로 갚아야 한다.

    시민의 한사람으로 베트남인들에게 사과한다.그리고 국가는 진실한 사죄와 배상을 베트남양민학살 유족에게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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