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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만.
    PEOPLE/세상을 보는시각 2019. 6. 11. 01:59
    황제가 되고 싶었던 대통령 이승만. 그를 국부라 부르던 시절을 지나 만주군 독립군토벌대 박정희를 근대화의 아버지라 하고 반란수괴 전두환난세의 구세주로 여기며 대한민국의 근대사가 가리워졌다.

    이승만은 어떻게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대대통령이 되었을까?부터 궁금증은 시작이 된다.그에 대해서는 긍정과부정이 엇갈리기 때문에 사실을 쫒아야 어렴풋이 알수 있다.

    이승만은 1875년 양녕대군의 후손으로 왕족의방계 였다고 한다.가난한 왕족집안에 태어나 어려온 살림에 공부하여 과거를 보고 벼슬을 하려고 하였으나 다섯번을 떨어졌다고 한다.이후 아펜젤러가 만든 배제학당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개화파가 되었다고 한다.
    독립협회 활동을 하며 개화파와 어울렸으나 고종의 퇴위를 주장하다가 감옥에 가시다고 한다.
    1905년 대한제국의 밀사로 미국에 갔다가 성과가 없자 미국에 눌러살게 되었다고 한다.
    배제학당학력을 인정받아 조지워싱턴 대학에 편입하여 공부하고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젊은날의 행적이다.
    이승만이 항일이 아닌 항조선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의문이 생긴다.

    고종이 왕이 된 과정을 보면 유추할수 있다.고종 역시 적통은 아니였다.그의 아비 대원군이 효종대왕의 방계 왕족이다.조선적통이 현종에서 끊어지고 강화도령 철종에 왕이된후 후사없이 승하후 대원군이 돈과 권모술수로 자식을 왕으로 세운이가 12살짜리 고종이고 이후 십년을 수렴청장후 고종에게 권력을 물려주었다.
    같은 방계왕족 이승만은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난 청일전쟁을 보며 우유부단한 고종의 조선에 부정적이었을 것이다.

    더불어 다섯번이나 과거에서 떨어지면 반감이 심해지고 미국인이 만든 배재학당에 들어가 미국에 기대고 싶었을 것이다.
    실제로 옥에 갇혀서도 영어공부는 영한사전을 낼 정도로 열심이었다고 한다.

    일찍이 결혼하여 박씨부인과 아들하나가 있었으나 아들만 미국으로 데려와 1914년 폐렴으로 사망하였다.

    미국에서 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을때 대통령이된 윌슨에게서 총애를 받아시다고 하고
    이 현직 대통령과의인맥은 이승만이 1919년 임시정부 초대총통이 되는것이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6년후 임시정부 대통령에서 탁핵을 당한후 하와이에서 항일지원자금을 모으며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고 한다.
    여행중 우연히만난 오스트리아 이혼녀 프란체스카와 중혼을 하며 독립단체의 임원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다고 하는데
    부인박씨가 있는 상태에서 서양여자와 결혼한것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부도덕한 사생활과 모금독립자금을 유용하여
    임시정부지도층에서는 인정을 받지못했다.

    이후 태평양전쟁이 벌어지고 워싱턴으로 본거지를 옮겨 미국주도층과 인맥을 쌓았다.
    그리고 해방이되고 몇달후 한국에 돌아와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향후 해방후 독립군세력과 임시정부인사를 탄압하고 암살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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