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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촬스 이번건은 심했네
    PEOPLE/세상을 보는시각 2018. 3. 31. 13:36

    우상호한테 안철수가 학생운동 팔아서 국회의원자리를 얻었다고 했다. 서로 한마디씩 던진것이지만 안철수가 이런말을 할만한 자격이 있는가에는 한마디 안할수 없다.

    항일투쟁을 한 사람들중 두 부류가 있다. 항일투쟁을 끝까지 하다가 재산을 탕진하고 자식들대엔는 가난으로 죽을 얻어먹여야할 정도로 가세가 기운 사람들과 항일투쟁을 하다가 일제에 투항하여 잘먹고 잘 산사람들이 있다.

    우리의 팔십년대는 반독재반군부투쟁이었다.
    길에 나서던 뒤에 있던 그 당시 대부분의 학생과 청년들은 전두환 독재를 타도하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의 세상을 꿈꾸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투쟁에 앞장선 개인들에게는 좋은 결과가 있지는 않았다.
    나는 운이좋아 전공이 컴퓨터라 대기업직장을 얻을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면접에서 물어본 말들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모 대기업의 첫질문이 학생운동하셨습니까? 였다. " 예 " 라고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 이번 취직도 끝이구나하고 포기를 하였다. 
    입사한 회사도 같은 질문을 하였다. 마음속에서는 아니요 라는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또 "예" 라고 대답을 하였다. 왜 학생운동을 했느냐는 질문에는 숙달된 답변으로 "시대의 양심때문에" 라고 대답을 했던것 같다. 다행히 노태우대통령때이고 면접관이 나중에 알고보니 학교선배라서 합격시켜주었다고 했다.

    그러나 전공이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취직을 하지 못했다. 함께 운동한 화공과 친구들은 대부분 작은 화공회사에 취직을 하였다. 수학과나 국문과 같은전공은 학원선생으로 갔다.
    그때도 운동권은 "낙인" 이었다.
    운동했다는 것으로 한번도 이익을 얻어본 적도 없고 대우를 받아본적도 없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그리고 지금도 박근혜를 찍었던 이명박을 지지하던 사람들과 만나며 개의치 않는다.
    만들고자 했던 세상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화공회사에 들어간 친구들이 화장품산업이 뜨기 시작하면서 화장품 공장사장이 되고 알만한 화장품회사 회장도 되었다. 그 친구들 역시 나라에서 지원받은것 없었다.
    나도 중국여행을 다녀오니 안기부에서 어떻게 알고 연락이 왔다. 명함에는 전무하고 써있더라.
    졸업한지 십년이 지났는데도 블랙리스트의 명단은 그대로 있었다.

    안철수가 우상호 한테 학생동지의 순수한 열정을 팔아서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말이 촬스입에서 나오니 가소롭다. 서울대 나와서 의사하다가 바이러스 프로그램 만들어서 벤쳐기업가가 된 순탄하고 평탄한 인생을 산 사람입에서 나오는 말이라 말인지 된장인지 모르겠다.

    안철수가 V3로 승승장구 할때 벤쳐기업하면 다들 배곯아 가면서 개발하고 프로그램은 대부분 무료여서 고생을 할때도 돈잘번던 안철수가 벤쳐기업을 위하여 어떤 기여를 하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최소한 바이러스 개발 분야에서라도 그가 업계를 위하여 노력한 희생은 있어야 하지 않는가? 나는 최소한 정치인 안철수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희생한 무엇인가가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입에서 우상호를 비난하는 목소리는 꼴불견이다.

    정봉주 우상호 임종석 정청래 그외 상당수가 학생운동권 맞다. 그러나 그들이 돌을 맞을만큼 비난을 받을만큼 학생운동을 팔아먹으며 살지는 않았다. 가끔은 조금더 선명하게 싸워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최소한의 학생운동 의무감이라도 기존 정치인보다 나을것이라 희망하였기 때문에 수많은 학생운동을 한 386이제는 586이 된 우리들도 비난을 하지 않는것이다.

    금수저에 운좋은 1962년생 안철수에게 386 이라 붙이지 못하는 이유기이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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